파이는 3.14 ??
다음, 네이버 지식백과 및 블로그 및 인터넷 글 펌
[블로그에서 가져온 일부분이 있는데
출처를 적어 놓지 못했네요.]
출처:[심슨 가족에 숨겨진 수학의 비밀]
계측바퀴
고대 이집트에서는 원통형 계측 바퀴를 굴려 그 회전수로 파이(π)의 값을 측정했다. 예를 들어 지름이 1미터인 계측 바퀴를 한 바퀴 굴린 길이는 파이(π)값을 가지게 된다.
파이를 그리스에서는 ‘아르키메데스의 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이전에는 3으로 추정되던 값을 계산하기 시작한 것이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기원전 287~212)였기 때문이다.
한편 독일에서는 이를 루돌프수라고도 하는데, 이는 1600년대 독일 출신 수학자 루돌프 반 쾰렌이란 사람이 소수점 아래 35자리까지 계산해 냈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겨 자신의 묘비에 새겨 넣도록 했고, 다른 사람들도 그를 기리기 위해 루돌프수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가장 뛰어난 수학적 성과물을 전하고 있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원주율을 3으로 추정해서 계산했다. 그들이 이룬 수많은 건축과 도시의 유적을 보면 원주율을 3으로 계산해도 크게 문제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편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원주율을 256/81=3.16049...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기원전 240년 무렵에 이르러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는 처음으로 223/71〈π〈22/7라고 계산에 의거, 파이의 수치를 추정했는데 그 계산 방법은 다음과 같다.
‘원주, 즉 원의 둘레길이는 원에 내접하는 정다각형의 둘레의 길이보다는 길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아르키메데스는 원에 내접하는 가장 큰 다각형을 작도한 끝에 정96각형을 작도하여 원에 내접시키면서 원주율의 근사치를 구했다.
이로써 원주율은 223/71 〈 π 〈 22/7 =약 3.14라는 계산치를 구했던 것이다.
큰 사각형의 둘레는
4 × 1 = 4,
피타고라스 정리를 이용해
작은 사각형의 둘레를 구하면 2.83,
π값은 2.83과 4.00 사이에 있습니다.
아르키메데스의 위대한 발견!!!
별 거 아닌 것 같다고요?
이제 시작입니다. -[블로그 글 펌]
원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므로 측정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아르키메데스는 직선으로 최대한 원에 가까운 도형을 만들면, 곡선을 측정하는 문제를 피할 수 있다는 위대한 발상을 했다.
지름(d)이 1인 원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C = πd임을 알고 있다.
d = 1이면 C = π이다. 자, 이제 정사각형 두 개를 그린다. 하나는 원 밖에, 하나는 원 안에다 원에 딱 닿게 그린다.
각각 크고 작은 정육각형입니다. 잘 계산해보면 π가 3.00보다 크고 3.464보다 작다. 아르키메데스는 억척스럽게 변을 늘려갔으며, 마침내 정 96각형의 둘레를 계산했다. 근대적 대수표기법도, 십진법도 모르면서 이 긴 계산을 일일이 손으로 했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일이다. 결국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 아르키메데스는 π의 참값을 3.141과 3.143 사이에 가두는 데 성공했다.
한편 150년 무렵 활동하면서 천동설을 주장하던 프톨레마이오스(Claudius Ptolemaeus, ?~?)는 원주율을 3.1416으로 계산했다. 파이의 계산에 있어서는 오히려 동양이 서양에 비해 앞서 있었는데, 480년 무렵 중국 남조(南朝)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조충지(祖沖之, 429~500)는 원주율을 3.1415926과 3.1415927 사이라고 계산하고 대략 22/7, 정확하게는 355/113= 3.141592...임을 밝혔다. 이 계산은 유럽에 비해 1000년이나 빠른 것이니 1573년에야 비로소 독일의 오토가 355/113를 확인한 것이다.
이후에도 동서양의 많은 학자들이 정확한 파이 계산을 위해 애를 썼는데 530년 무렵 아리아바타(Aryabhata, 인도)는 62832/20000로 계산했으며, 같은 인도의 바스카라(Bhbskara) 2세는 1150년 무렵 3927/1250이라고 계산했다. 또한 1699년 샤프(Abraham Sharp)란 학자는 소수점 아래 71자리까지 계산했고, 1706년 머신(John machine)은 100자리까지 계산하는 데 성공했다.
1737년에는 연구에 몰두한 나머지 스물여덟 살에 한쪽 눈을, 쉰아홉 살에는 양쪽 눈을 잃고 만 스위스 출신 순수수학의 창시자 오일러(Euler)가 기호 (π)를 채택하여 이때부터 파이가 일상생활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1767년 스위스 출신 독일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람베르트(Johann Heinrich Lambert)가 드디어 파이가 무리수임을 증명함으로써 아무리 계산해도 끝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도전은 그치지 않았다. 1844년 독일의 놀라운 암산왕 다제(Zacharias Dase)란 이는 암산으로 소수점 아래 200자리까지 계산했는데, 그는 79532853 × 93758479 = 7456879327810587이란 계산을 불과 54초 만에 해낼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1853년에는 러더퍼드(Rutherford)가 다시 소수점 아래 400자리까지 계산했고, 1948년 영국의 퍼거슨(Ferguson)과 렌치(Wrench)는 공동으로 808자리까지 계산하며 기뻐했다. 그리고 1961년 렌치와 퍼거슨은 그때 막 가동을 시작한 컴퓨터 IBM7090을 이용하여 소수점 아래 100,265자리까지 계산하는 데 성공했다. 컴퓨터를 이용한 계산은 그 후에도 이어져 1981년 일본의 가즈노리 미요시와 가즈히카 나카야마는 FACOM M-200 컴퓨터를 이용하여 2,000,038자리까지 계산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과학적 계산에서는 파이를 몇으로 계산할까? 정밀한 계산에서는 원주율을 3.1416 또는 3.14159로 계산하는데, 인공위성 등 첨단의 계산에서는 소수점 아래 30자리까지 계산된 원주율을 사용한다.
그로부터 800년의 세월이 흐른 기원후 5세기, 중국 수학자 조충지는 아르키메데스의 방법을 한 단계, 아니 정확히 말해 12,192단계 발전시켰다. 12,288개의 변을 가진 두 정다각형을 이용해 π값이 3.1415926과 3.1415927 사이에 있음을 밝혀낸 것이다.
1630년 오스트리아 천문학자 크리스토프 그리엔버거는 다각형으로 소수점 아래 38자리까지 계산했어요. 과학적으로 이 이상은 쓸모가 없대요. 우주의 정확한 지름을 밝혀냈다면 소수점 아래 38자리 π값만으로도 우주 둘레를 정확히 계산할 수 있으니까요. 수소 원자 한 개 길이의 오차 안에서 말이죠.
그렇지만 π를 조금이라도 더 정확하게 측정하려는 투쟁은 멈추지 않았다. 에베레스트 산에 도전하는 것과 같았다. 수학이라는 풍경에서 π는 무한히 높은 산이었고, 수학자는 그 산을 측정하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전략이 바뀌었다. 느려터진 다각형 접근법 대신 π값을 더 빨리 알아내는 몇 가지 공식을 찾아낸 것이다. 18세기 수학자 레온하트 오일러는 다음과 같은 우아한 공식을 발견했다.
이후에도 π값 계산 경쟁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1847년 영국의 아마추어 수학자 생크스는 707자리까지 계산했다고 주장했으나 527자리 계산에서 실수를 했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나자 계산기가 등장했습니다. 1958년 파리 데이터처리센터는 생크스가 평생을 바쳐 계산한 707자리를 IBM704 계산기로 불과 40초만에 마쳤다네요. 현재는 시게루 곤도와 알렉산더 이가 π 차트 정상에 올라 있습니다. 10조 자리! [심슨 가족에 숨겨진 수학의 비밀]